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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차창작 글/단편

비릿함

마추PIKCHU 2017. 3. 19. 17:34

채 새벽공기가 다 가시지도 않은 채인 산골에 조용히 여우 한 마리가 서성거렸다. 아무도 살지 않는 폐가에 무언가 먹을 것이 있나 두리번 거렸지만 아무것도 찾을 수 없었다. 어이쿠, 불쌍해라. 낮은 목소리. 여인의 비웃음이 여우의 곱상한 털을 스쳤다. 조용히 노려보더니, 생선대가리를 문 채로 사라졌다. 여인은 비릿하게 웃음지으며 여우를 향해 소리쳤다. 더는 이 집에 아무도 살지 않는단다.


비릿함

W.간첩


먼지가 쌓이다 못해서 뭉쳐진 마루에 여인이 걸터앉았다. 이런 흉가에서 나왔다 하기에는 믿기지도 않는 고운 실로 짠 고급진 옷을 입은 여인이었다. 칠흑같이 검은 머리카락은 어째서인지 뿌리가 아닌 끝에서부터 하얗게 변하고 있고 선량하게 쳐진 눈매에는 다홍색의 화장이 칠해져서는 눈매조차 도도하게 변해있었다. 이미 반의 반쯤 하얕게 된 머리를 매만지며 누군가를 기다리고 있었다. 여인은 그런 허공을 바라보며 이리로 오렴, 이라며 손짓했다. 허공이 아니라 귀신이 하나 서 있던 것이었지만.

안녕, 이라는 짧은 인사 이후에는 고요한 적막이 흘렀다. 유령은 조용히 여인의 머리카락을 바라보았다. 필히 차사의 옷감과도 같아 살짝 소름이 돋는 듯 제 팔을 만졌다. 여인이 물었다. 어째서 성불하지 않는 것이냐. 아아, 그게, 누군가를 좀 기다리고 있지. 차사를 피해다니느라 꽤나 엇갈렸지만 만났고. 흐뭇한 듯 생기어린 눈으로 하늘을 보았다. 무성한 나뭇잎에 가려져 있긴 했지만 분명히 영롱한 연한 쪽빛 하늘이었다. 새벽공기도 채 가시지 않아 좀 더 운치있었다. 

그래서 언제쯤 성불할 계획? 여인이 먼지가 쌓인 뒤 쪽으로 쓰러지듯 누웠다. 귀신이 잡을 생각이었던 것 같지만 뭐 귀신이 사람을 만질 수 있을리가. 사실 벌써 성불해야 했지. 순간을 놓친 것 뿐이다. 하핫, 힘 빠진 웃음을 지으며 말했다. 싱겁긴. 여인은 제 소매를 만지작거렸다. 부드러운 것이, 죽은 사람을 더욱 생각나게 했다. 복통이 온 것 같지만 티내지 않기로 했다. 이제 곧 성불할 귀신 앞에서 복통을 호소하는 것은 좀 아니라고 생각한거겠지. 

그 쪽 지금 배 아프지? 어떤 재주로 알아차렸는지는 모르겠으나 귀신은 아는 눈치였다. 주제에 눈치만 빨라서, 아픈것은 맞아. 예전부터 긴장하거나 공허하면 늘 이랬으니까. 눈물은 흐르지도 않는 주제에 왜 숨을 쉴 수 없게 하는지조차 모르는 여인은 다시 한 번 비릿하게 웃었나. 귀신은 그 웃음을 보고는 알 수 없는 표정을 지었다. 왜 너는 그런 웃음만 짓는것인가? 여인이 답했다. 행복을 주던 사람이 없어졌거든.

나에게 행복을 주던 사람은 죽었어. 내가 사랑했던 그 사람은 죽어서, 이제는 없다. 나도 그것을 알고 있었고. 그 때에 내 주변의 사람들은 모두들 나를 위로했지만 여인은 직감적으로 깨달았던거야. 자신은 이제 행복해질 수 없다고. 이젠, 그 사람 얼굴도 기억이 나지를 않아. 그래서 괜히 더 아프기만 하고 말이지. 짜증나게, 쓸데없이 요절해서는.

귀신은 눈물을 흘릴 수 없었다. 애초부터 귀신에게 눈물이란게 존재할 수 없고 귀신은 죽은지 꽤 된 그런 존재라 사람들의 감정엔 다소 둔감해졌기 때문이겠지. 귀신도 마룻바닥에 걸쳐앉아 먼지를 만지작거렸다. 손을 들어서는 누워있는 여인의 머리카락을 쓰다듬고는 빙긋 웃 듯이 아픈 표정을 지었다. 여인의 눈에 익은 표정이었다. 차사가 왔네, 라고 말하고는 필히 먼지가 되 듯 순식간에 사라져셔는. 끝까지 여인의 머리카락을 만지고 있었다.

어쩐지 익숙한 느낌이 들어서 여인은 조용히 방 안으로 들어갔다. 벽에서 아직도 지워지지 않는 핏자국을 손으로 매만지면서 가위를 들었다. 이걸로 된거야, 평생 보지 못할 사람아.

내세, 내세.

여인이 조용히 속삭이면서 벽에 기댔다. 여우를 향해 짓던 비릿한 웃음을 지은 채로. 

그 녀석, 생선 대가리 말고 먹을거 생겨서 좋겠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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