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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차창작 글/단편

17년의 세월_功

마추PIKCHU 2017. 3. 14. 22:43
17년의 세월_功


W.간첩


좋아한다는 말을 들었을 때의 심정은 꽤나 복잡해졌다. 동성에다가, 17년을 같이 보낸 친구. 시간은 우리의 친밀도를 바벨탑처럼 쌓아올렸고 불안한 우리의 탑은 그녀의 고백으로 인해 모래성인 양 무너져내렸다. 공든 탑은 내 눈 앞에서 허물어졌다. 가슴 속에 무언가, 덩어리가 생기는 기분이었다. 이대로 그녀를 놓칠 것 같다는 불안함과 그녀의 마음을 받아주지 않을 나에 대한 억한 심정이었다.

나는 그녀를 친구 이상으로 보지 않았다. 그녀는 언제나 내 옆에서 태양인 양 웃고있는 아름다운 친구였다. 그녀가 웃을때 주위는 반짝반짝 빛났고 그녀가 우울할 때는 내가 그녀의 버팀목이 되려 노력했다. 그렇지만 우리는 그뿐이었다. 나는 그녀를 친구 이상으로 보지 않았기에, 그 이상 오는 것을 불편해했고 그녀 또한 나의 그런 마음을 아는 것인지 나를 친구 이상으로 대하는 모습을 거의 본 적이 없었다.

우리는 파트너였다. 그녀도 나도 서로를 파트너라고 생각했고 사람들은 우리를 파트너라고 불렀다. 그녀의 행보에는 내가, 나의 행보에는 그녀가 동행하며 혼나고 장난치고 울고 웃는 일을 같이 해 왔다. 언젠가 그녀에게 남자친구가 생겨서 누구보다 기뻐해준 나였고, 언젠가 내가 원하던 고등학교에 붙기 전에 함께 노심초사 하며 기다려준 그녀였다. 정말 누구보다 가까운 사이, 누구보다 서로를 알 수 있는 사이였다.

예전에 나와 그녀는 8개월동안 잠깐 사귄적이 있었다. 그것은 그녀의 고백으로 시작해 그녀의 울음으로 끝난 비극이었다. 8개월동안 그녀도 나도 연인들끼리 할 수 있는 것을 처음부터 끝까지 해보았다. 나의 웃음은 어디까지 진실이었을까. 분명히 나는 행복했었다. 그녀도 행복한 표정을 지었다.

나는 우리가 완벽히 안정되기를 바랬다. 모든 것이, 우리가 사귀기 전으로만 돌아간다면 그것만큼 기쁜 일도 없으리라. 나는 우리의 탑이 금이 갔다고 믿고 있었다. 그 자그마한 흠 정도는 충분히 우리의 노력만 있다면 메꿀 수 있고, 더 이상 쌓아가지만 않는다면 우리의 탑은 불안하지 않을 것이라고 생각했다.

좋아해, 라고 고백받았다. 나는 표정을 일그러트릴 수 밖에 없었다. 가장 나를 잘 알아주던 그녀가 내 마음과 반대되는 행동을 했다는 배신감 때문일까, 아니면 아직 채 아물지 않은 그 날의 상처 때문일까. 분명히 나는 이 탑의 금을 메꾸려 노력하고 있었는데 그녀는 망치를 들고 그 금간 부분을 때리고 있었다. 나는 그 장면을 보고만 있었다. 완전히 무너질 때 까지. 완전히 무너지고 나서야, 나는 그녀를 말릴 수 있었다. 거절했다. 완벽하게.

17년간 공들인 그 탑은 흔적도 없이 사라졌다. 나는 울 수도 없을만큼 슬퍼서, 조용히 입만을 다물고 있었다. 나는 그녀를 더 이상 찾지 않았다. 그녀는 더 이상 내 표정을 읽지 않았다. 아니, 읽지 못하는 것이었을까.


_나 역시 전부 이제와서 하는 얘기지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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