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름의 끝자락, 아마도 곧 지나갈 9월의 초반. 이미 저녁은 선선하고 뙤약볕의 공격을 받지 않는 이상 더울 이유도 없는 날. 하늘거리는 옷을 입고 연못가에 앉은 사람. 또한, 밤도 낮도 아닌 것, 황혼의 공기를 마시는 사람. 동시에 웃을 준비를 하는 사람. 가을을 맞이하며 잎을 떨굴 준비를 하는 수국과 연인을 잊을 준비를 하는 윤이 있었다. 윤, 연인 – Hydrangea 윤은 연인을 만났던 이후로 줄곧 차분해졌다. 동시에 휴대전화를 자주 확인했다. 연인이 혹여나 연락하지 않을까 하여. 연인은 윤과 만난 그 날 이후, ‘잘 들어갔어요?’를 끝으로 연락을 하지 않았다. 생존신고 느낌으로, 종종 윤의 인스타그램 게시글 – 거의 야근 게시글 – 에 ‘좋아요’나 누를 뿐이었다. 윤은 서운한 감정이 없지 않아 있..
만남과 이별에 익숙해지며 살아가는 사람은 이런 일로 상처받지 않는다고 윤은 생각한다. 어차피 언젠가는 헤어질 사람이었다며 자신의 등을 보이지 않는 손으로 쓰다듬는다. 속박을 혐오하는 연인과 적당한 속박을 요구하는 윤은 유감스럽게도 맞지 않는 사람이다. 결국 연인의 말을 기점으로 ‘전 여자친구’ 타이틀을 얻은 윤은 아무렇지도 않게 상처를 주는 연인을 상대로 아무렇지도 않은 척을 하고 만남의 장소를 빠져나온다. 아이러니 하다. 처음과 끝이 같은 곳에서 맺어진다. 울컥하는 느낌을 받는다. 울지 않는다. 덤덤하게 이별의 함수를 써 내린다. 윤은 쓴웃음을 지으면서 걷는다. 윤의 연인은 눈썹조차 움직이지 않은 덤덤한 표정 그대로다. 윤은 어쩐지 자신이 지나치게 감정적이라고 바라보게 된다. 그대로 택시를 잡아 집으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