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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차창작 글/윤, 연인

윤, 연인 – Hydrangea

마추PIKCHU 2018. 7. 28. 11:42

 여름의 끝자락, 아마도 곧 지나갈 9월의 초반. 이미 저녁은 선선하고 뙤약볕의 공격을 받지 않는 이상 더울 이유도 없는 날. 하늘거리는 옷을 입고 연못가에 앉은 사람. 또한, 밤도 낮도 아닌 것, 황혼의 공기를 마시는 사람. 동시에 웃을 준비를 하는 사람. 가을을 맞이하며 잎을 떨굴 준비를 하는 수국과 연인을 잊을 준비를 하는 윤이 있었다.

 

 

 윤, 연인 Hydrangea

 

 

 윤은 연인을 만났던 이후로 줄곧 차분해졌다. 동시에 휴대전화를 자주 확인했다. 연인이 혹여나 연락하지 않을까 하여. 연인은 윤과 만난 그 날 이후, ‘잘 들어갔어요?’를 끝으로 연락을 하지 않았다. 생존신고 느낌으로, 종종 윤의 인스타그램 게시글 거의 야근 게시글 좋아요나 누를 뿐이었다. 윤은 서운한 감정이 없지 않아 있었다. 사실, 만난 그 날. 윤은 연인과 하루를 보냈기 때문이다. 윤은 연인의 손길이 전과는 비교도 안 될 정도로 발전되었다는 것 또한 느낄 수 있었다.

 

 “머저리 녀석.”

 

 최소한 본인 마음 정도는 헤아려 줬으면 하는 윤이었다. 동시에 잘 알고 있었다. 연인은 자신을 사랑하고 자신을 위한 생각을 하느라 남에 대해 생각을 할 시간이 없다는 것을. 연인은 윤과 연애할 적에, 아마 연인의 인생 중에서 가장 많은 남 생각을 했을 것이라는 걸 윤은 잘 추측하고 있었다. 꽃병에 꽂힌 피안화(彼岸花)를 보니 문득 연인과의 추억이 돋아날 듯도 했다. 붉은색의 피안화. 바깥은 반대로 새카만 밤이었다. 우울한 색이다. 슬픈 추억은 우울함을 만난다. 반응성이 확실히 좋은 두 원소였다.

 

 윤은 연인과 하룻밤을 보내고 작별할 적에 연인이 그럼, 다시 봐요.’라는 말을 한 적이 없다는 걸 알고 있다. 그건 연인의 작별인사이자 작별의 주문이었다. 윤은 연인이 그렇게 자신과의 관계를 전부 잊는다는 사실이 조금 마음 아팠다. 하지만 윤 또한 연인을 잊지 않으면 안 된다. 둘은 친구 이하의 사이다. 그건 윤과 연인, 두 사람 다 확실히 알고 있는 관계였다. 종종 윤은, 자신과 연인이 피안화와 밤처럼 반응성이 높은 원소였길 바라고 있었다. 하지만, 이제는 잊어버리는 것이 정론이었다.

 

 윤은 밖을 산책하기 위해 신을 신었다. 어쩌면, 이렇게 밖을 쏘아 다니다 보면, 저번처럼 우연으로라도 연인을 만날 수 있지 않을까 하는 기대감 탓이었다. 산책로에는 자양화(紫陽花)가 피어있었다. 그의 뜻은 연인과 닮아있다고 윤은 생각한다. 변덕, 무정, 냉담. 미간을 살짝 구겼다가 풀었다. 그러고 보니 가장자리에 자신의 그림자가 걸려있었다. 확실히 큰 꽃이었다. 수국에 걸린 그림자의 끝부분은 어쩐지 봄부터 이어진 여름의 미련 같아서, 수국에서 조금 떨어져 걷게 되었다.

 

 

 윤이 지금쯤 뭐하냐고 묻는다면 연인은 아마 윤의 생각을 하고 있다고 대답했을 것이다. 어제까지는. 오늘은 아니었다. 오늘은 어쩐지 평소와 같았다. 정확히는 윤을 만나기 이전으로 돌아갔다. 최근을 평소의 기준으로 삼는다면 오늘은 이상한 날이 된다. 결국, 거짓말을 하게 될 것이었다. 차라리 윤을 의식적으로 피하고 있는 것을 다행으로 생각하는 연인이었다. 물론, 어느 쪽이나 문제가 되기 때문이다. 윤을 생각해도, 생각하지 않아도 문제가 되니. 연인은 잔의 기둥을 잡고 기울였다. 시럽 맛이 진하게 느껴졌다. 윤의 향기와 비슷한 시럽을 일부러 골랐다고 해도, 연인은 딱히 반박할 말이 없었다.

 

 “이걸로 된 거야.”

 

 연인은 바텐더와 이야기했다. 울먹이면서 말하기를 기대한 바텐더는 아쉬운 표정을 지으며 연인의 이야기를 들었다. 두 사람은 서로에게 상당히 알맞은 사람이었기 때문에, 서로를 나름 배려하여 이별을 택했고, 여파로 서로를 그리워하고 있는 것이라. 그건 분명 아픔이었다. 연인은 윤의 마음을 짐작하지 않았다. 단지 자신이 윤을 생각하면 마음이 아파져 온다는 것을 알 뿐이다. 연인은 윤을 잊고 싶었다. 그저, 어제도 오늘도 내일도 윤과는 다시 함께할 수 없다는 걸 연인은 안다. 어째서 윤 본인만이 모르는 건지 연인은 답답할 뿐이었다. 일생을 희망차게 바라본 윤은 연인과는 확실히 전망을 다르게 생각했다.

 

 연인은 차라리 자신이 자신만을 사랑하는 사람이 아니었다면 윤을 잡을 수 있었을지도 모른다고 생각했다. 어쩌면, 윤을 보낼 필요가 없었을지도 모른다고 생각했다. 차라리 아예 자신만을 사랑해서 윤의 사정 따위는 생각하지 않았다면 윤을 보낼 생각을 하지 않았을 것이다. 평범하지도 않지만 사람답지도 않았다. 연인은 자신의 어중간함을 탓할 수밖에 없었다. 잔을 내려놓았다. 연인의 잔에는 시럽이 남아있었다. 바텐더가 연인에게 물었다.

 

 “다 안 마셔?”

 “. 그래서요.”

 

 윤의 향기가 나는 시럽, 사실 그냥 시럽. 그러나 윤이 겹쳐 보여서 차마 다 마실 수 없었다. 연인은 자신의 나쁜 선택을 탓했다. 도수가 센 칵테일 탓일지 몰라도, 가슴이 애탄다.

 

 

 밤공기는 확실히 쌀쌀했다. 여름의 막바지는 가을이었고 윤은 반소매였다. 윤은 기침을 몇 번 하고는 집으로 발걸음을 돌렸다. 윤은 아무리 걸어봤자 연인을 마주칠 수 없다는 걸 이미 나오기도 전부터 알고 있었다. 윤은 낙관을 탓했다. 외로운 낙관과 밤, 우울함의 색. 윤은 모든 상황이 자신을 비참하게 만들기 위한 무대일지도 모른다는 상상을 한다. 물론 그럴 리가 없다. 홀로 걷다 보니 어느새 집이었다. 조용한 해 질 녘의 온기는 아직 집안에 남아있었다. 윤은 왠지 어딘가에 고이 감춰둔 연인과 자신의 사진을 보고 싶었다.

 

 상자를 열어 둘의 사진을 보았다. 지난여름, 둘은 어딘가로 놀러 간 모양이었다. 제주도로 추정되는 해변도로, 두 사람은 자전거를 세워두고 사진을 한 장 찍었었다. 윤은 당시가 겨우 기억난 듯했다. 해안도로이므로 바람도 시원했다. 여름 바람과 함께 둘은 붙어있었다. 나름대로 추억 속의 거리였다. 윤은 사진을 보며 울지 않았다. 그냥, 이런 일도 있었지. 윤은 연인을 닮아서 차분해졌다. 다시금 상자에 사진을 넣어두고 이불에 폭 들어갔다. 조용한 해 질 녘의 온기는 사라진 지 오래. 밤의 정적이 윤을 감싸 편안케 한다.

 

 윤은 이따금 이 시간에 했던 연인과의 통화를 생각한다. 이때만큼은 평소 안 하던 어리광을 부리기도 한 연인은 윤이 보기에는 매우 사랑스러웠다. 이제는 볼 수 없다는 것은 윤의 가슴을 절절하게 한다. 그래도, 지난봄, 함께였을 때는, 충분히 어리광부릴 수 있었잖아. 윤은 불만족스러웠다. 이불 속에 파묻은 얼굴이 답답해졌다. 하지만 얼굴을 밖으로 꺼낼 생각은 없었다. 정말 윤은 이걸로 된 거다. 아무리 힘들어도 그걸로 끝인 거다. 윤은 자신이 무슨 생각을 하며 무슨 최면을 걸어야 하는지 알고 있다. 지금은 그 시기이다.

 

 새가 운다. 새도 울고 윤은 혼자다. 윤은 이 우울한 색 하늘 속에서 조금 비참함을 느낀다. 윤은 그 날, 제주도에서 자전거를 타며 여름 바람을 맞은 날, 연인과 함께였고 함께였던 그 날의 하늘을 기억하고 있었다. 연인을 닮은 청량한 하늘, 푸른 하늘. 윤이 행복했던, 연인과 함께였던 그 날의 하늘. 지금의 우울한 하늘도 언젠간 그 하늘로 돌아갔으면 하는 윤은 혼자였다.

 

 

 연인은 이걸로 된 것으로 생각하지 않았다. 둘 다 서로를 그리워하고, 절대로 확실하게 끝내지 않았다. 아니, 과거에 확실히 끝냈다 하더라도 이미 하루를 보내고 난 시점에서 확실히 끝냄은 애초부터 없었던 게 확인되었다. 그제야 연인은 자신의 감정을 확신할 수 있었다. 할 수만 있다면 이전으로 돌아가고 싶었고, 상처 되었고 상처 주었던 모든 말과 행동을 잊고 싶었다. 연인도 물론 울지 않았다. 다만 윤을 줄기차게 피할 뿐이었다. 이건 윤이 모르고 있는 연인의 어리광이었다. 자신이 편하게 있고 싶으므로 윤의 감정을 무시하고 있었다. 악질적인 나르시시즘은 버릴 수 없었다. 연인은 결국, 자신만 생각하고 있었다. 윤과 이별한 원인 그대로였다.

 

 ‘발전이 없잖아, 왜 나만 그 자리인 거야, .’

 

 연인은 윤을 만나 감정의 동요를 일으키기 싫으니 오늘도 도망치고 있다. 자신이 편하게 있기 위해, 윤의 답답함은 저 멀리 떠나보낸 채로.

 

 연인은 역시나 나아지지 않았고 어중간함에서 벗어날 수 없었다. 차라리 나쁜 쪽으로 확 가버리면 연인의 양심은 사람을 사귀지 마라라며 연인을 잘 돌볼 것에도. 연인은 늘 상처 주는 처지였다. 상처를 실컷 주어놓고 자신의 성향을 변명거리로 삼는다. 아직 사람이 되기엔 글러 먹었다. 연인이 밖으로 나오니 윤이 보고 있는 하늘과 같은 우울한 색 하늘이 연인을 맞이했다. 연인 또한 윤과 함께 보았던 하늘을 생각해낸다. 윤이 걸었던 산책로 쪽을 통해 집에 갈 생각을 하고 있었다. 연인은 걷는다. 피안화와 수국이 연인의 길을 만든다. 연인은 슬픈 추억과 자신의 변덕을 변명 삼아 윤은 들리지 않는 대화를 한다.

 

 

 너만을 기억하고 있어, 윤은 연인이 윤은 어찌 되든 상관없다라는 생각을 하고 있다고 생각했다. 연인 또한 윤이 연인은 이제 잊어야 하고, 잊을 것이다라는 생각을 하고 있다고 생각했다. 둘 다 서로를 과대평가하고 있었다. 두 사람은 서로의 생각의 반 정도밖에 따라갈 수 없었다.

 

 

 윤은 이불 속에서, 연인은 피안화와 수국의 사이에서 서로에 대한 미련을 털기 위해 노력하고 있었다. 두 사람은 우울한 색의 하늘에 파랗던 하늘을 침식시켜가며 검은 도화지를 만들기 위해 노력하고 있었다. 흰 펜을 준비하는 건 비교적 쉬울 테지, 라며 이번엔 서로를 과소평가한다. 윤은 울지 않았다. 연인 또한 울지 않으려고 노력했다. 연인은 벤치에 앉아서 밤공기를 맞았다. 윤은 여름 끝자락의 선선한 밤바람을 이불 밖으로 나와 느낀다. 두 사람은 모르는 새 함께였다. 사실 두 사람은, 그걸로 된 거다. 더 무엇을 어떻게 할 수 없었다. 두 사람은 학력만 높았을 뿐이다.

 

 어제부터 오늘까지, 다시 오늘부터 내일까지 두 사람은 평생 그 상태일 것이다. 멀어지기엔 너무 멀어졌고 가까워지기엔 용기가 없다. 두 사람은, 최소한 한 사람은 알고 있다. 이 상태 그대로라면 초반엔 보고 싶어서, 말 하고 싶어서 제정신이 아니겠지만 시간이 지나가면 괜찮아진다는 것을 분명히. 다만 죽을 때까지 답답할 것이라는 걸 알고 있다. 그건 두 사람의 업보이며 행동의 결과였다. 누군가를 탓할만한 여유가 되지 않았다.

 

 

 연인은 지금, 유독 그답지 않았다. 고개를 푹 숙인 채 휴대전화를 켜 윤에게 전화를 걸었다. 덜덜 떨리는 손으로 자신의 귀에 전화기를 가져다 댔다. 밤공기와 피안화, 수국의 향기와 윤의 향수 향의 시럽은 그를 취하게 했고, 지질한 전 남자친구 행색을 하고 있게 되었다.

 

 ‘3, 아니 5번 울릴 때까지 받지 않으면.’

 

 링이 4번 울릴 시점에 윤은 전화를 받았다. 다만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놀란 눈치였다. 연인 또한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아무 말도 할 수 없었다. 연인은 연애하면서도 우는 모습을 윤에게 단 한 번도 보인 적이 없었다. 연인은 답지 않게 울고 있었다. 색색거리는 울음의 숨소리만이 윤에게 전달되었을 뿐이다. 먼저 말을 튼 건 윤이었다.

 

 “울어?”

 “, .”

 “우는구나.”

 “…….”

 

 연인은 사실 하고 싶은 말이 많았다. 자신과의 약속 탓에 할 수 없었을 뿐이다.

 

 “우리, , 연애했을 때,”

 “으응?”

 “내가 버거웠어요?”

 “갑자기 왜.”

 “그랬어요?”

 “아니. 안 그랬어.”

 “정말이에요?”

 “정말이야.”

 

 연인은 울면서도 안심한 듯 눈물을 닦았다.

 

 “그럼 그걸로 됐어요.”

 

 연인은 숨을 깊게 들이쉬었다. 윤은 조용했다. 연인은 그걸로 된 거라면, 윤이 불행하지 않았다면 된 거라는 자기 생각에 윤의 말을 대입했다. 연인은 안심했다.

 

 ‘이제 잊고 싶다면 잊어줘요. 난 충분히 했어요.’

 

 

 윤은 조용했다. 그걸로 된 거라는 말의 뜻을 윤은 어림잡아 짐작할 수 있었다. 윤은 그걸로 된 게 아니다. 윤 또한 연인의 행복 혹은 불행이 중요했다. 윤은 연인에게 되묻고 싶은 것이 있었다.

 

 “너는?”

 “?”

 “너는 안 불행했어?”

 “, 불행의 기준이 뭔데요?”

 “…….”

 

 윤의 말문이 막힌 틈을 타 연인은 이야기했다.

 

 “나는 윤 만나서 후회한 적 단 한 번도 없어요.”

 “…….”

 “내가 걱정하는 건 윤의 후회였어요. 이제 괜찮아요, 난 안 불행했잖아요. 이걸로 된 거야.”

 “나는, 네가, 나를,”

 “나는 윤보다 나를 사랑해요, .”

 “그러니까, 너는.”

 “아직 까지는 윤을 잊고 싶지 않아요.”

 “나는.”

 “, 나를 잊고 싶으면 잊어도 돼요. 난 지금 윤이 잊고 싶지 않아서 윤을 기억할 거니까.”

 “나도 너를.”

 “그래도, 서로 잊어버린 것처럼 살기로 해요.”

 

 윤은 연인이 전화기 밖에서 봄날과 같은 웃음을 짓는 것을 느낀다. 연인이 진지할 때 항상 그랬다. 윤은 수습할 수 없음을 알고 있다. 이걸로 된 거다. 이렇게 된다면, 잊어버리고 싶다. 전화로 작별인사를 나누고 친구가 되고 싶다는 마음을 내비친 채로 잠이 든다. 연인은 윤이 깰 시간까지 전화를 끊지 않았다.

 

 

 윤은 다음 날 저녁에서야 일어났다. 늦게 잔 탓이다. 지금은 여름의 끝자락, 아마도 곧 지나갈 9월의 초반. 이미 저녁은 선선하고 뙤약볕의 공격을 받지 않는 이상 더울 이유도 없는 날. 하늘거리는 옷을 입고 연못가에 앉은 사람. 또한, 밤도 낮도 아닌 것, 황혼의 공기를 마시는 사람. 동시에 웃을 준비를 하는 사람. 가을을 맞이하며 잎을 떨굴 준비를 하는 수국과 연인을 잊을 준비를 하는 윤이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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