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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차창작 글/윤, 연인

윤, 연인-起

마추PIKCHU 2018. 7. 28. 10:48
 만남과 이별에 익숙해지며 살아가는 사람은 이런 일로 상처받지 않는다고 윤은 생각한다. 어차피 언젠가는 헤어질 사람이었다며 자신의 등을 보이지 않는 손으로 쓰다듬는다. 속박을 혐오하는 연인과 적당한 속박을 요구하는 윤은 유감스럽게도 맞지 않는 사람이다. 결국 연인의 말을 기점으로 ‘전 여자친구’ 타이틀을 얻은 윤은 아무렇지도 않게 상처를 주는 연인을 상대로 아무렇지도 않은 척을 하고 만남의 장소를 빠져나온다. 아이러니 하다. 처음과 끝이 같은 곳에서 맺어진다. 울컥하는 느낌을 받는다. 울지 않는다. 덤덤하게 이별의 함수를 써 내린다. 윤은 쓴웃음을 지으면서 걷는다. 윤의 연인은 눈썹조차 움직이지 않은 덤덤한 표정 그대로다. 윤은 어쩐지 자신이 지나치게 감정적이라고 바라보게 된다. 그대로 택시를 잡아 집으로 간다. 가는 길은, 하늘도 날씨도 온난했다. 윤은 생각한다. 나도 맑아져야지.


“윤이는... 지금 없는데요.”

 윤의 동기 A가 난처한 선배에게 윤의 행방을 질문받았다. 윤은 맑아짐을 위해서라며 며칠간 학교를 결석했다. 난처한 선배는 “시험기간 중에 잠수를 타면 어쩌자는 건데요!” 라며 불쌍한 A에게 화를 낸다. 출제자가 잠수를 타면 분명히 안 되는거다. 윤의 휴대전화에 쌓인 부재중 전화만 스물 두 건. 침대를 더럽히는 동안 윤의 휴대전화는 계속 울렸다.


“윤 씨, 저 전화 안 받아도 되는건가요?”

 A 라고 되어 있는데. 의아한 표정으로 B는 물었다. 윤은 아무 말도 하지 않고 얼빠진 표정으로 그저 천장을 바라볼 뿐이다. B는 픽 하고 웃으며 윤에게 얼굴을 묻는다. 윤은 높은 소리를 천천히 내뱉으며 휴대전화를 뒤집었다. 휴대전화를 잡은 손은 깨끗하지 않았다. 윤의 큰 들숨과 날숨 이후 손소독제를 손에 흥건하게 바르고는 마르기를 기다렸다. B는 그저 기대하는 표정으로 윤을 바라볼 뿐이었다.


“이렇게나 엉망이 될 생각까진 없었는데요.”

 시트가 엉망이 되었을 즈음에 윤은 B에게 넋두리를 털어놓았다. B는 그저 영혼 없는 미소로 응대했다. 윤은 주섬주섬 옷을 챙겨 입고 문 밖으로 나선다. 신발을 신으며 윤은 말했다.

“사실, 지금도 잘 모르겠어요.”

 이 사태가 난 것이 과연 엉망인 건지, 윤은 자세히 모르는 눈치다. B와의 만남도 썩 좋은 만남으로 끝나지는 못한 모양인건지. 윤은 자신의 손가락을 보다가 버스를 놓칠 뻔 했다. 윤은 자신이 엉망이 되는 일은 일어나지 않으리라 다짐하며 버스 맨 앞 좌석에 앉았다. 귀에는 이어폰을 끼고 듣고 싶은 노래를 틀었다. 윤은 아무하고도 잘 수 있는 -  쉽게 말해 죄악감이 사라지는 - 이별 3주째의 날을 보내고 있다. 버스 창문에 기대어 어딘가로 놀러가고 싶다는 생각과 함께 계획을 세운다. 제주도에 가서 바다를 보고싶다며.


 “지금 기분이 좋을 거라고 생각해?”

 윤의 연인이 질타하듯 그의 친구에게 말했다. 역시나 눈썹 하나 까딱 하지 않는 무표정인 채로. 친구는 실소를 지으며 미안하다고 말했다. 함께 놀러가자는 계획을 세우려다 제대로 퇴짜맞았다. 그들은 병을 기울인다. 펍에서의 병맥주로 어색함을 달랜다. 피아노가 현란한 재즈 속에서 바이올리니스트는 아일랜드 음악을 연주하듯 재즈를 연주한다. 어울리지 않는다고 연인은 생각한다. 그럼에도 휘파람으로 노래에 호응한다. 연인의 친구는 얼굴이 금세 벌개져서는 칭얼댄다. 연인은 친구를 등에 업고 펍을 나선다. 마침 지나가는 빈 차를 잡아 친구를 태우고 집으로 향한다.

 ‘취한 사람 다루는 건 오랜만이지...’

 윤은 잘 취하지 않았기 때문이다. 윤은 담배도 싫어했다. 하나같이 연인과 맞지 않는 사람이다.


“윤 씨, 저 하나 말할 게 있는데.”

 윤은 이런 류의 말을 무서워한다. 정말 나쁜 말 아니면 정말 좋은 말이기 때문이다. 저런 말을 듣기 위해서는 많은 용기가 필요했다. 윤은 침을 한 번 삼키며 들을 준비가 되었다는 제스처를 보낸다. 손이 흥건히 젖은 C는 윤에게 말했다.

“윤 씨랑... 그러니까, 저어...”

 얼굴이 붉어져서는 잔뜩 망설이는 표정에 윤은 손을 짚고 슬금슬금 뒤로 빠진다.

“윤 씨랑 진지하게 만나고 싶어요.”

 혹시나 했으나 역시나 그는 윤과 진지한 만남을 원했다. 윤은 애써 웃음지었다. 하하하. 이미 제대로된 웃음은 아니었지만. 윤은 웃는 채로 바닥을 보았다. 웃음에 공포가 서려있었다. 어차피 제멋대로 끝낼 주제에 고백하는 C가 경멸스러웠다. 윤은 알몸인 채로 주먹을 꽉 쥐고는 C의 눈을 바라보지 않은 채로 거절했다.


 윤이 만난 사람들은 다 거기서 거기, 그렇고 그런 족속이었다. 윤은 자신에게 관대했던, 조금 특별했던 연인이 그립다. 호텔에서 나와 끔찍한 기분을 달래며 흥얼흥얼. 길을 걷는다. 윤의 기분은 좋지 않다. 윤은, 본디 운도 좋지 않았다. 윤의 기분이 나쁜 날에는 늘 날이 밝았다. 마치 지금 오늘처럼. 윤은 자신의 운수를 한탄할 뿐이었다. 쨍한 햇빛이 윤을 비춘다.

 윤은 하늘을 본다. 구름이 몽게몽게 떠가는 하늘을. 파아란 하늘을. 손을 뻗는다. 눈이 부시기에 그 길로 눈을 가린다. 연인과 윤이 함께인 거리였다. 적어도 작년까지는 그랬다. 올해는 아쉽게도 개화도 전에 끝나버렸지만. 아무렴 어떤가. 그러나 윤은 조금 억울했다.

 “너도 내 생각이 나면 좋겠는데.”

 그렇지만 너무 많이 하지는 않아도 돼. 딱 내가 네 생각 나는 정도로만. 사실 연인이 아프다 해서 윤에게 돌아오는 이득은 없었다. 단지 그가 이별을 슬프게 여겼으면 하는 소망을 조금 반영했을 뿐이다. 윤은 계속 그 거리를 걷는다.


 연인은 택시를 탔다. 귀에는 이어폰을 꼽고 창 밖을 보며 홀로 사색한다. 파랗고 하얀 하늘. 맑은 하늘이다.

 “여기서 내려주세요.”

 연인은 택시 요금을 내고 노란 보도블럭 위에 선다. 그러고는 주위를 빙 둘러본다. 벚나무로 둘러싸인 공간에 출처 모르는 아카시아 향이 가득하다. 그러고보니, 과거에 이 곳을 윤과 걸은 적이 있었다. 연인은 그 때의 기억을 꺼내본다. 조금 슬프긴 하지만 아름다웠으니, 지금의 벚꽃과 비교하는 것이라며 애써 합리화를 한다.

 연인은 자신을 너무나도 사랑한다. 연인에게 연인의 연인이란, ‘자신의 사랑을 받을만큼의 가치가 있어보이는 사람’. 결국 자기애의 매개체에 불과했다. 그런 존재를 뛰어넘어 그나마 마음을 열 뻔 했던 윤은 이제 없다. 결국 본인이 떠나보냈다. 그 사실이 연인을 조금 쓸쓸하게 했지만 뭐, 이제는 다 지난 일이다 하며 연인은 자신을 토닥인다.


 사실 이 근방을 윤 또한 걷고 있었다. 윤이 내뱉은 공기를 연인이 마시고 다시 연인이 내뱉은 공기를 윤이 마신다. 두 사람의 물리적 거리는 가까웠다.

 “윤?”

 익숙한 목소리에 윤은 뒤를 돌아보지 않을 수 없었다. 여유로운 표정을 짓고있는 연인이 윤의 앞에 있었다. 전 연인을 마주하는 일은 불쾌했지만 두 사람 모두 서로에게 적대적인 감정이 없었다. 생각보다 평온한 광경이 된다.

 “그동안 어떻게 지냈어요?”

 연인의 말을 시작으로 두 사람 사이에는 대화가 오간다. 안부부터, 근황까지.

 “난 잘 지냈지, 너는?”
 “나도 잘 지냈어요.”

 벚꽃 사이에서 안부를 묻는 헤어진 연인들이라니. 이 무슨 아이러니한 상황이란 말인가. 윤은 분명히 그렇게 생각했지만 자신의 운이 좋지 않은 것을 탓한다. 그저 그럴 뿐이다. 소극적인 저항조차 하지 않는다. 사실, 윤도 별로 기분이 나쁘지는 않았기 때문이다.

 “새로운 사람은 찾았어요?”
 “아니. 못 찾았어.”
 “나도요. 윤 만한 사람을 못 찾겠던데요.”
 “...그런 말 하지 마. 이별은 너부터 시작했잖아.”
 “그렇죠. 그치만 윤도 잘못이 있다고요.”

 이별은 분명히 연인부터 시작했다. 둘은 차라리 이럴 바엔 근처 카페에 가서 앉아서 이야기 하자며 발을 옮긴다. 천천히 걸으면서 서로는 긴장을 풀었다.

 “요새는 뭐하고 지내?”
 “나야 뭐 똑같죠. 대학, 대학... 윤은요?”
 “모르는 사람이랑 조금 자고 다녔어.”
 “윤, 원나잇 싫어하지 않아요?”
 “그랬지. 하지만 외로웠는걸. 섹스도 하고싶었고.”
 “참.”

 연인은 잘 모르겠다는 듯 고개를 기웃거렸다. 두 사람의 얼굴에는 여유로운 미소가 띄워졌다. 서로 긴장이 완전히 풀렸다는 이야기겠지. 하지만 닿으려고 하지는 않았다. 닿으려고 하는 게 더 이상하기는 하다. 그렇게 걷다보니 어느새 카페였다.


 “여긴...”

 아이러니 하게도 처음과 마지막의 그 곳이다. 잠시 멈칫 하고는 안으로 들어선다. 무의식 적으로 익숙한 자리를 찾아 앉는다. 푹신한 소파 위에 쓰러지듯. 주문을 하고 음료가 나오기까지 기다린다. 창 밖을 보니 벚꽃이다.

 “예쁘네.”
 “그러게요.”

 윤은 헛기침을 하고는 말했다.

 “억울해?”
 “뭐가요?”
 “그냥, 이것 저것...”
 “하하, 당연히 억울하죠.”

 윤은 미간을 찌뿌렸다. 그에 반해 연인은 여전히 여유로운 얼굴이다,

 “네가 억울한 건 알겠지만, 나도 마찬가지로 억울하거든.”
 “알아요. 이별의 시작은 나인걸.”

 윤은 알고 있다. 분명 연인이 더 억울하면 억울했지, 덜 억울하지는 않다는 것을. 그런 것 탓에 조금 미안한 듯한 눈빛으로 연인을 쳐다본다.

 “네가 더 억울하지는 않아?”
 “왜 그렇게 생각 하는데요?”
 “고등학생 때부터 나에게 투자했잖아.”
 “내가 좋아서 한 일을 누구에게 책임지라고 해요.”

 확실히 어른스러운 발상이었다. 윤은 그를 보고 분명히 군자라고 생각했다. 아마 나였으면 분명 억울해서 물어내라 했을거야. 그 새에 주문한 음료가 나왔다. 윤은 얼음이 가득한 레몬에이드를 홀짝이며 밖을 본다. 순간 알 수 없는 감정이 휘몰아치며 벚꽃비를 내리게 한다.

 “벚꽃은 매년 돌아오는걸.”

 연인은 그저 웃고만 있었다. 머그에 담긴 따뜻한 카페라떼를 마시며 연인이 대답했다.

 “올해의 벚꽃은 돌아오지 않네요.”

 정말 하나같이 안 맞는 사람들이다. 윤은 공기가 통하지 않는 실내에서 바람 비슷한 것을 느낀다. 윤은 다시 한 번 레몬에이드를 기울인다.

 “떨어진 벚꽃잎은 주울 수 없을까.”

 연인은 역시 웃고만 있었다. 커피를 마신다. 분명 연인은 고양이 혀인데, 커피 자체가 식어서 나온건가 싶었다.

 “떨어진 첫사랑은 주울 수 없네요.”

 언제나의 설레는 눈빛으로 연인은 윤을 응시했다. 윤은 타투가 있는 연인의 손에 자신의 손을 가까이 가져다 댄다. 연인은 피하지 않는다. 윤은 다가가는 도중에 멈칫, 하고 손을 뒤로 뺀다. 그리고는 다시 레몬에이드를 기울인다. 레몬에이드에 띄워진 박하를 거른다. 별로 먹고싶지 않았다.

 “내년에도 볼 수 있을까.”

 윤은 가장 미미한 어조로 말했다. 연인은 아무 대답도 하지 않았다. 그저 머그잔만 기울일 뿐. 오랜 사랑이 결실을 맺는다 하더라도 분명 좋은 것만 있지는 않다고, 윤은 그제서야 깨달았다. 윤이 일어나 연인에게 입을 맞춘다. 때때로 윤은 수학적이지 못했다. 입을 떼니 서로에게서 나는 레몬향과 커피향이 아카시아도 누를 만큼 세게 풍겨온다.

 뭔가가 많이 박힌 제 귀를 타투 있는 손으로 만지작 거리며 연인이 대답한다.

 “그거야, 나는 모르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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